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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숨쉬는 시민운동을 위하여
[ 2006-05-31 10:44:41 ]
글쓴이  
@프랙탈
조회수: 3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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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숨쉬는 시민운동을 위하여

시민운동 속의 시민운동

흔히 실없이 웃는 사람을 일컬어 ‘허파에 바람 들었다’고 하지만 허파는 텅 빈 공기주머니가 아니다. 허파는 나뭇가지처럼 큰 가지가 작은 가지로 갈라지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는 매우 오밀조밀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적혈구가 산소를 흡수하기 위해서는 폐의 세포벽과 접촉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넓은 표면을 가지는 것이 유리하다. 수지상 구조의 반복은 표면을 극대화하기 위한 최적의 전략인 셈이다. 이른바 프랙탈 구조이다.

프랙탈 이미지

프랙탈 이미지

이것은 우리 몸의 순환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순환계는 산소와 영양을 세포에게 신속히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혈관이 세포 바로 가까이에 분포해 있어야 한다. 만약에 심장에서 각 세포에 일일이 혈관을 통해 산소와 영양을 직접 공급해야 한다면 우리 몸은 완전히 혈관으로 채우고도 모자랄 형편이 된다. 그래서 최소의 부피를 차지하면서 몸의 모든 부분과 속속들이 접촉을 유지하는 방법은 프랙탈 구조밖에는 없다. 생태계는 살아남기 위해서 이런 방식의 효율성을 발전시켜왔다.

큰 빌딩의 배관이나 각 가정으로 연결되는 상하수도관, 전화선, 인터넷 망도 마찬가지이다. 가령 서울의 상하수도 처리장에서 수백만 가구의 상하수도관을 하나하나 직접 연결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서울과 평양의 직통전화처럼 각 가정마다 전화선을 직접 연결한다면? 아마도 땅속은 물론이고 공중도 전화선으로 꽉 차게 될 것이다. 인터넷은 어떨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래서 프랙탈 구조가 필요한 것이다. 프랙탈 구조는 그렇게 나름대로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인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프랙탈 구조는 사회를 운영하는 시스템에서도 똑같이 찾아볼 수 있다. 어느 집단이나 공동체이든 프랙탈적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어느 특정인의 의도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구조가 형성된다. 만약 어느 집단에서 각 개개인에 전달되는 의사소통구조가 점조직으로 되어 있다면 대단히 비효율적이고 경직된 양상을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일일이 개개인과 의사소통 파이프를 연결해야 하니 말이다. 가령, 어느 기업에서 사장이 사원 한 사람 한 사람을 불러 업무 지시를 해야 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무슨 비밀조직이 아니고서야 그런 조직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전체는 끊임없이 부분으로 분화해 가는 과정에서 자기유사구조를 반복해 나간다. 부분 속에 전체가 있는 셈이다. 화엄의 체계를 세운 법장은 이것을 “하나하나의 모든 티끌에 이르기 까지 사자의 각 눈과 귀와 수족 각각에 금사자가 있다. 일체의 털에 의해 포용된 모든 사자는 동시에 그리고 즉시 하나의 털 속으로 들어간다. 따라서 일체의 털 속에는 무한히 많은 사자들이 들어있다.”고 인다라망으로 설파했다.

프랙탈 구조는 효율적 구조이기도 하지만 소통의 구조이기도 하다. 가령, 사람마다 특성이나 증상이 제각각이라면 감기약을 조제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의사나 약사가 약전을 배운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사람에게는 특수성도 있지만 보편성이 있기에 처방이 가능한 것이다. 사람이 모두 다르기만 하다면 이 세계는 이해할 수도, 존재할 수도 없다. 인간은 서로 같으면서도 다른, 전체의 한 부분이자 바로 전체이기도 하다. 이것이 인간을 자동차 부속품처럼 기계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조직이나 집단, 공동체 내부의 소통이 가능한 것은 개개인이 전체의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프랙탈 구조를 통해 집단의 구성원들은 공통의 가치, 비전을 공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시민운동은 어떨까. 앞의 예를 들어 비유하자면 시민운동이 건강하게 숨을 쉬고 세포 구석구석까지 혈액을 원활하게 공급할 수 있는 방법은 프랙탈 구조밖에 없다. 시민운동이 ‘숨’을 쉬기 위해서는 시민들과의 접촉을 극대화해야 한다. 아니 말에 약간의 어폐가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민들이 숨을 쉬는 것이다. 이렇게 시민들이 숨을 쉬고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산소 즉, 새로운 삶의 방식과 접촉하는 표면을 최대한 넓게, 그리고 가장 경제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그 방식이 바로 프랙탈이다.

그런데 프랙탈은 시민사회가 숨을 쉬는 방식에만 머물지 않는다. 내용에 있어서도 프랙탈적이다. 인간이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프랙탈 구조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가령, 내가 옆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전체의 한 부분이지만 공통된 그 무엇 즉, 전체의 가치를 담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또 그것이 프랙탈식 반복 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서울시와의 관계도 프랙탈적이다. 나와 서울시가 세상에 둘도 없는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서울시의 실체는 서울시청이 아니라 천만 서울시민이 유기적 관계로 모여진 전체이다. 그런 전체가 프랙탈 구조로 만나는 것이 바로 나이다. 내가 서울시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프랙탈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공명도 프랙탈적이다. 공명은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같아지는 것이다. 가령, 조용필의 노래를 듣고 공명하는 것은 나와 같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같은가. 이런 상상을 해보자. 세상에 유일무이하게 나와만 공명하는 그런 외로운 가수가 있을까. 오직 나만을 위해서 노래하는 그런 가수가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국민가수 조용필은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도사리고 있는 공통된 그 무엇이다. 조용필은 그렇게 대중들의 가슴과 가슴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그 무엇이다. 그러한 전체가 나와 프랙탈적으로 만나는 것이 바로 공명이다. 그래서 조용필이 천만 명의 팬과 공명할 수 있는 것도 프랙탈 덕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운동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프랙탈 덕택이다. 시민운동은 나뭇가지처럼 큰 가지로부터 작은 가지까지 끊임없이 유사구조를 반복한다. 말하자면 시민운동 속에 시민운동이 반복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시민운동은 한국사회에서 끝없이 반복된 유사구조의 작은 가지이지만 그 자체가 전체이기도 하다. 이것이 시민운동이 시민의 삶과 분리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게 프랙탈 구조를 갖지 않으면 시민들은 시민운동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단지 시민운동이 너무 생소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나와 수천만 개의 전화선을 직접 연결하듯이 내가 수천만, 아니 무한의 채널로 세계를 직접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런 채널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지만 접촉하는 것도 피곤해서 도저히 못할 일이다. 방식에 있어서나 내용에 있어서나 그것은 프랙탈식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시민의 삶 속에 시민운동이 있고 그 속에 다시 시민운동이 되풀이 된다는 의미는 사실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반복 실천 가능하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똑같은 일을 지루하게 되풀이 한다는 뜻이 아니다. 운동은 이미 프랙탈적이지만 고도화 될수록 프랙탈도 정교화 된다. 우리들의 ‘허파꽈리’는 그렇게 해서 확장된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성찰을 무슨 신비로운 내면 성찰로만 생각하는데 사실은 꽈리구조를 확대해 나는 것이다. 여기서 끊임없이 프랙탈화 하지 못하는 운동은 ‘멈춤’을 뜻한다. 갈 곳 없는 마포종점의 쓸쓸함이라니! 그래서 프랙탈이야말로 바로 역동성이요, 자기혁신이다. 운동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확산, 내면화 된다.

이제 시민단체 중심의 시민운동이 아니라 허파꽈리의 표면적을 최대한 넓게 하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사회 속속들이 산소와 영양을 공급할 수 있도록 혈관을 통하게 하는 운동이 뭐가 있을까. 의식과 물질을 억압하는 모든 내적 외적 조건으로부터의 자유, 그 자유를 위한 꽈리구조의 끊임없는 메타적 재생산... 그렇게 시민운동이 가야할 길은 멀기만 하다. 그런 의미에서 시민운동 속에 시민운동이 끊임없이 되풀이 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출처 : 시민의 신문(NGOTIMES) 2006-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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