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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태 교수의 이름 이야기

 

 

 

현대 추상미술

 

 

현대 추상(象) 미술

잭슨 폴록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866~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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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현대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처음에는(1886∼1892년) 모스크바대학에서 법학과 경제학을 공부하였다. 1889년 러시아 민속미술에 감명을 받았고, 1895년 프랑스 인상파전에서 C. 모네의 작품에 감명을 받았다. 이듬해인 1896년 에스토니아의 도르파트대학 법학교수로 초빙되었으나 회화에 전념하기로 결심, 뮌헨으로 가서 그림공부를 시작하였다. 1900년 뮌헨아카데미의 F. 슈투크에게 사사하였고 1901년 예술가집단 <팔랑크스>를 창립, 그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하였다. 네덜란드·이탈리아·튀니지·크림 반도 등을 여행한 뒤 A. 야블렌스키, A. 쿠빈 등과 신예술가협회를 창립하였다. 이 무렵 작품은 오로지 자연에 입각해 그려졌으나 자연이 주는 정감을 마음으로 그렸으며 터치와 색채를 강조하는 주관적 경향이 강하였다. 그가 추상에 접근한 것은 1908년 G. 뮌터와 함께 뮈르나우에 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저녁 무렵 화실로 돌아온 그는 벽에 걸린 한 작품이 내적인 광휘로 빛나고, 무엇이 그려져 있는지 알 수는 없으나 형상과 색채만으로 그림이 성립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는 곧 그림이 거꾸로 걸려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뒤로 대상이 불필요함을 느껴 모든 표현을 색채에 맡기기 시작하였다.《종탑이 있는 풍경》(1909)에서는 대상이 거의 본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 뒤이어 1910년《즉흥곡》《콤퍼지션》의 수채연작에서 최초로 순수한 서정적 추상화를 그렸고 1911년 유채 추상화를 그렸으며 새로운 회화론인《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을 집필하여 뮌헨에서 출판하였다. 또한 F. 마르크와 신예술가협회를 탈퇴하고 함께 <청기사(靑騎士)>를 조직하여 구상 회화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모스크바로 돌아가 1918년 미술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1921년 다시 베를린으로 가서 이듬해부터 1933년까지 바우하우스의 교수로서 후진양성과 신예술 개척에 힘썼다. 이 무렵부터 종래의 유동적 터치와 형태 대신 상징·기호로서의 확정적 형태를 구사한 서정적 기하학주의 양식이 시작되었다. 1926년《점·선·면》을 간행하였다. 1933년 바우하우스가 폐쇄된 뒤 파리 교외의 뇌이쉬르센에 살았으며 1939년 프랑스에 귀화하였다. 1937년 나치스가 퇴폐예술가라고 지적하여 작품이 몰수당한 적도 있다. 그는 미세한 유기적 형태와 기묘한 상형문자풍의 형태를 구성하는 최후의 양식을 전개시켰다. 그의 작품과 그 새로움이 완전한 평가를 받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뒤의 일이다. 그는 현대 추상회화를 창시한 한 사람으로서, 대상의 구체적인 재현에서 이탈, 선명한 색채로써 교향악적이고도 다이내믹한 추상표현을 관철한 후 점차 기하학적 형태에 의한 구성적 양식으로 들어갔으나 몬드리안과는 또 다른 독자적인 자취를 남겼다. 주요작품으로는《푸른 산》《즉흥 14》《검은 선들》《가을》《콤포지션 7》등이 있으며, 또 추상미술 이론가로서《예술에서의 정신적인 것》(1921) 《점·선·면》(1926) 등의 저술도 남겼다.        ┲ more

칸딘스키(W. Kandinsky)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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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화가. 칸딘스키와 더불어 추상회화의 선구자로서 신조형주의 주창자이다. 1894년 암스테르담미술학교를 졸업했다. 처음에는 자연주의 화풍에 철저하였으며 쓸쓸한 겨울풍경과 정물 등을 그렸는데, 뭉크의 영향을 받아 섬세하면서도 어딘지 병적이었다. 처음에는 인상주의, 뒤에는 H. 마티스의 색채에, 1911년 파리에서는 입체파에 영향을 받았다. 그 후 신비주의 화가 얀 투로프를 알게 되어,《나무》의 연작(連作)을 권유받아 차차 추상으로 바뀌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고국에서 이 연작으로부터 추상을 탐구하여, 1915년 수평·수직의 2선분에 의한 화면 구성에 도달하였다. 시각을 배반하지 않는 이 2선분과, 3원색 및 무채색 배합에 의해 회화에서 일체의 재현적 요소를 추방하고 생명력의 근원을 암시하는 질서와 균형을 구성원리로 삼으려는 것이 그의 조형이론이다. 그는 이 신조형주의를 바탕으로 1917년 도스부르크 등과 함께 드 스틸(De Stijl)운동을 일으켰으며, 끝내는 수평과 수직의 순수추상으로 향하였다. 이는 질서와 비율과 균형의 미이며, 경건한 칼뱅주의자인 아버지에게 감화를 받아서 자신도 고독과 청빈에 만족하며 종교적인 엄격한 경지를 지녔다. 칸딘스키의 우발적인 비대상(非對象)의 추상과 비교하면 그의 경우는 문자 그대로 나무면 나무, 모래언덕이면 모래언덕 본질의 추상으로서 추상화가 탄생한다. 그는 파리에서 이론서적《신조형주의》를 펴냈으며《적·황·청의 콤퍼지션》이 그 시대의 대표작이다. 1930년대에는 다시 화면을 단순화한《두 선의 콤퍼지션》을 그렸다. 1938년 런던을 거쳐 1940년 뉴욕으로 망명했는데, 거기에서 종래의 검은 선 대신에 색면을 잘게 분절화(分節化)한 작품을 그렸다. 주요작품으로는《햇빛 속의 풍차 Windmill in Sunlight》《빨간 나무 The Red Tree》등이 있다.        ┲ more

몬드리안(P. Mondrian)

 
 

 잭슨 폴록 (Jackson Pollock, 1912~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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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화가. 추상표현주의의 대표적 화가이다. 로스앤젤레스와 뉴욕에서 공부하였다. 스승 T.H. 벤턴의 영향으로 1930년대 벽화운동에 참가하였고, 1940년대에는 미국에 망명한 프랑스 초현실주의자 A. 마송의 영향으로 인디언의 토템이나 그리스신화 등 정신분석에 입각한 오토마티즘기법으로 비구상적 환상을 그렸다. 1930년대 무렵부터 표현주의를 거쳐 추상화로 전향하였으며, 구겐하임 부인과 비평가 그린버그의 후원을 받아 격렬한 필치를 거듭하는 추상화를 창출하였다. 특히 1947년에는 마루에 펼쳐놓은 캔버스에 올라가 공업용 페인트를 떨어뜨리거나 튀겨서 전신동작과 행위의 궤적(軌蹟)에 따라 그림을 완성하는 독자적 화법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것은 화가 자신의 몸동작이나 행동의 흔적이 선(線)으로서 화면 가득히 채워져 이미지를 발생시킴과 동시에 화가의 다이내믹한 제작행위를 직접 화포에 기록하는 것이었으므로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 불리게 되었다. 액션 페인팅은 캔버스에 점착성(粘着性) 안료를 떨어뜨리거나 뿌리는 따위의 즉흥적인 행동을 통하여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직접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서, 묘사된 결과보다도 작품을 제작하는 행위(과정)에서 예술적 가치를 찾으려는 기법이다. 1951∼52년에는 거의 흑·백만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화법을 구사하여 끊임없는 실험정신을 보여주었다. 미국미술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선구적 역할을 한 화가로서 세계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대표작으로《비밀의 수호자들》《페인팅 No.1》《가을의 리듬》《No.31》《서부로 가는 길》《남성과 여성》《여름철》등이 있다.        ┲ more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에셔 (M.C. Escher, 1898~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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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urits Cornelis Escher 에스헤르(에셔).   1898. 6. 17 네덜란드 레바르덴~1972. 3. 27 라렌.   사실주의적 세부묘사를 통해 기이한 시각효과와 개념적 효과를 성취한 판화작품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의 판화가·그래픽 아티스트.
1898년 6월 17일 네덜란드의 프리슬란트주 레바르덴에서 토목기사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919년 하를렘에 있는 건축장식미술학교 건축과에 입학했는데 점차 관심이 판화로 옮겨가게 되어, 이후 그래픽과로 옮겼다. 1922년까지 건축장식미술학교에서 판화제작 기술을 배웠다. 초기에는 풍경화가로 이탈리아 등지를 여행하며 전원풍경을 주로 그렸다. 1922∼35년까지는 이탈리아, 1935∼36년까지는 스위스에 머무르면서 스케치를 하며 유럽 전역을 여행했는데 이 시기의 그의 작품은 서로 모순되는 원근법을 이용한 환상적인 수법으로 풍경과 자연현상을 묘사한 것이었다. 1936년 에스파냐의 그라나다에 있는 알람브라궁전을 방문한 뒤 아라베스크 양식으로 궁전의 벽과 마루를 장식한 타일의 이슬람 모자이크에 자극을 받았다. 이때부터 기하학적 원리에 따른 환상을 자세히 그린 특이한 작풍을 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물고기·새·동물 등을 반복적으로 대칭배열하여 전체 패턴을 구성하였다. 판화가로서 그의 원숙한 화풍은 꼼꼼한 사실주의와 역설적인 시각효과 및 원근법 효과를 결합한 1937년 이후의 판화 연작에 잘 나타나 있다. 1941년 네덜란드의 바른에 머물며 이전의 풍경적 사물화에서 탈피하였고, <수학적 화상>이라고 하는 그만의 독특한 세계인 공간과 평면의 마술적 구조를 목판화와 석판화로 제작하였다. 1944년 무렵부터 초현실주의적 색채를 띤 그의 작품은 3차원적 구성을 2차원적으로 표현해 사실과 상징, 시각적 환영, 시각과 개념의 관계 등을 다루어 실제경험으로는 모순된 것에 합리적 느낌을 나타냈다. 공간착시와 불가능한 장면의 사실적 묘사, 정다면체를 소재로 한 작품을 만들었으며, 판화작품에서는 수학적 개념이 핵심적 역할을 하였다. 1950년 무렵 인정을 받기 시작하여 1968년 헤이그시립미술관 회고전에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는 주변에 있는 것을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고 자기의 상상에 기본을 두고 내적 이미지를 표현하였다. 평면의 규칙적인 분할을 바탕으로 한 무한한 공간, 공간 속의 원과 회전체 등이 작품의 중심을 이루었다. 뛰어난 기량을 발휘해 평범한 일상 사물들에서 예기치 않은 은유를 포착한 그의 작품들은 수학자와 지각 심리학자 및 일반 대중의 관심을 끌었고 20세기 중엽 널리 복제·보급되었다. 주요작품으로는《반사되는 공을 든 손 Hand with Reflecting Globe》(1935) 《올라가기와 내려가기 Ascending and Descending》(1960) 《폭포 Waterfall》(1961) 등의 석판화가 있다.

에셔(M.C.Es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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