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 아트

주역(周易)
카오스

프랙탈
프랙탈 아트
프랙탈 무비
갤러리Ⅰ
갤러리Ⅱ
갤러리Ⅲ

@프랙탈 아트

프랙탈 공식(Formulas)Ⅰ
프랙탈 공식(Formulas)Ⅱ
우리 곁의 프랙탈
현대 추상미술
참고 자료
History

이메일 Email

김만태 교수의 이름 이야기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3.7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 1944.2.1  미국 뉴욕 시.
데 스테일(de Stijl)이라고 알려진 추상미술 운동의 대표적인 화가. 본명은 Pieter Cornelis Mondriaan. 그의 작품은 20세기 미술과 건축 및 그래픽 디자인에 큰 영향을 미쳤다. 초기 작품은 당시 유행하던 네덜란드 풍경화 및 정물화 양식을 따랐다. 그는 입체파 양식을 시도한 뒤, 1920년경 원숙한 '신조형주의' 양식을 개발했다. 이 양식은 직선과 직각, 그리고 검은색과 흰색을 약간 더한 원색의 가장 단순한 조화를 바탕으로 순수하게 객관적으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했다.
 

 

 젊은 시절과 작품 

몬드리안(Piet Mondrian)아메르스포르트의 칼뱅파 초등학교 교장이자 아마추어 소묘 화가인 피테르 코르넬리스 몬드리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안정되어 있으면서도 창조적인 환경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브라함 쿠이퍼라는 보수적 칼뱅파 정치인을 중심으로 결성된 정통파 신교도 단체의 일원이었고, 삼촌인 프리츠 몬드리안은 헤이그 풍경화파에 속해 있었다. 14세 때 그림을 공부하기 시작하자, 삼촌과 아버지는 그를 지도했다.

몬드리안은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지만 가족의 강요에 못 이겨 우선 교육학학위를 받았다. 1892년에 그는 중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 같은 해 그는 교직을 구하는 대신, 당시 가족이 살고 있는 윈테르스웨이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의 화가에게 그림을 배웠다. 그후 국립 아카데미에 등록하기 위해 암스테르담으로 갔다. 그는 위트레흐트에서 쿤스트리프데라는 미술단체의 회원이 되었고, 1893년에 이곳에서 첫 번째 전시회를 열었으며, 이듬해에는 암스테르담에서 2개의 미술단체에 가입했다. 이 시기에도 그는 여전히 아카데미의 소묘반 야간부에 다니면서 꾸준히 노력하여 교수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1897년 2번째 전시회를 열었다. 19세기말까지 몬드리안의 그림은 그 당시 네덜란드에서 유행하던 양식(선명한 조명 효과를 이용해 암스테르담 근처의 초원과 간척지에서 선택한 주제를 차분하게 가라앉은 색조로 그리는 풍경화와 정물화)을 따르고 있었다. 1899년 암스테르담의 한 저택 천장에 그림을 그려 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그는 이 집의 막내아들에게 경의를 표해 사계절의 알레고리를 표현한 작품을 그렸다. 1901년 '로마 대상'에 작품을 공모했지만 결선에 오르지 못했다. 같은 해 스페인을 잠시 여행했으나 그다지 기억에 남는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1903년 그는 정물화로 윌링크 반 콜렘 상을 수상하여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벨기에 브라반트에 사는 친구를 방문했는데, 이곳에서 발견한 시골풍경의 조용한 아름다움은 그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이곳에 계속 머물렀고, 이듬해에는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발견하고 거기에 맹렬히 몰두하게 되었다. 1905년 암스테르담으로 돌아갈 때쯤, 그의 작품은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주로 가인 강 연안에서 그린 암스테르담 주변 풍경은 뚜렷한 율동적 구조를 보여주며, 통상적으로 그림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빛과 그림자의 명도보다는 구성적 구도에 더 치우쳐 있다. 풍차와 농가 및 일련의 나무는 그가 이 시기에 즐겨 다룬 주제였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당시 네덜란드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예술의 전통적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후기인상파와 외광파의 영향 

1907년 암스테르담에서는 쾨드리에날레가 열렸는데, 이 전시회의 주역은 원색을 대담하게 사용하는 케스 반 동겐, 오토 반 레스, 얀 슬뤼에이테르스 같은 후기인상파 화가들이었다. 형태보다 색채를 선호하는 그들의 취향은 몬드리안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친 것이 분명하다. 같은 해에 그가 그린 〈붉은 구름 Red Cloud〉을 보면, 이 그림을 지배하는 요소는 형태가 아니라 색채이기 때문이다. 풍경에서 받은 인상을 재빨리 그린 이 스케치를 시작으로, 몬드리안은 새로 발견한 색채주의의 가치를 실험하는 일련의 작품을 발표했다. 〈울레 근처의 숲 Woods near Oele〉(1908)에는 새로운 중요한 양상들이 나타나 있다. 선의 움직임은 노르웨이의 화가 에드바르트 뭉크를 연상시키고, 노란색·오렌지색·푸른색·보라색·빨간색에 바탕을 둔 색채구성은 표현주의 양식의 영향을 암시해준다. 크고 힘찬 이 그림을 통해 몬드리안은 네덜란드 회화의 전통에서 벗어나 당대 유럽 미술의 대열 속에 끼어 들었다.

그는 네덜란드의 미술가 얀 토로프(Jan Toorop)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표현양식을 더욱 강화했다. 토로프는 네덜란드에서 외광파 운동을 주도했고 분할묘법을 옹호했는데, 이것은 빛을 원색의 점이나 짧은 선으로 표현하되 그림으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만히 바라보면 병치된 색들이 원색이 아닌 2차색으로 나타나 보이는 기법이었다. 몬드리안은 이런 색채 사용법에 몰두했고, 원색만 사용했다. 주로 노란색·빨간색·파란색으로 그려져 있는 〈햇빛 속의 풍차 Windmill in Sunlight〉 같은 그림은 강렬하게 빛나는 햇빛을 나타내는 훌륭한 솜씨를 입증해주었다. 그러나 같은 해인 1908년에 그린 〈빨간 나무 Red Tree〉에서, 그는 빨간색과 파란색이라는 대조적인 색깔을 조화시키고 나무의 격렬한 움직임과 푸른 하늘을 조화시켜 일종의 균형감각을 창조함으로써 자신의 자연관을 표현했다. 이 균형감각은 그가 자연을 묘사할 때 항상 추구하는 목표이다. 1909년 암스테르담의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대규모 단체 미술전에 외광파 계열의 작품들을 출품했는데 이것을 계기로 그는 네덜란드 현대화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혔다.

1909년은 다른 관점에서도 몬드리안의 생애에 있어 중요한 해였다. 5월에 그는 신지학(神智學)협회에 가입했는데, 이 협회는 우주에 존재하는 삼라만상은 하나의 원천에서 비롯되며 정신과 물질은 불가분하게 통합되어 있다고 믿었다. 그후 몇 년 동안 몬드리안의 이 새로운 철학은 자신의 그림에도 반영되었다. 그는 웨스트카펠레에 있는 등대처럼 자연계의 커다란 물체를 그리는 일에 몰두했는데, 이 등대는 일찍이 그가 분할묘법으로 그린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형태에 새로운 관심을 기울여 지난 번과는 전혀 다르게 묘사했다. 돔부르크에 있는 교회와 젤란트의 풍차 같은 주제도 역시 위풍당당한 형태를 묘사하려는 의도를 나타내고 있다. 서 있는 3명의 인물로 이루어진 3폭 그림 〈진화 Evolution〉(1910~11)는 인간의 모습과 건축물의 놀라운 유사성을 보여주어, 그가 창조하는 인간과 생명이 없는 건축물 사이의 상징적 동일성을 강조한다. 1910년 그는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성 루카스 전시회에 외광파 계열의 작품들을 출품해 상당한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1911년에는 파리의 앵데팡당 미술전에 자연의 무한함을 표현한 그림 1점을 출품했는데, 이것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한 그의 첫 번째 시도였다.
 

 

 파리에서의 입체파 시절 

같은 해 몬드리안은 암스테르담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의 초기 입체파 작품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는 여기서 너무나 깊은 인상을 받았기 때문에, 1912년초 파리로 이주해 몽파르나스 구역에 숙소를 정했다. 그는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입체파(立體派·Cubism) 양식을 자신에게 맞게 변형하기 시작했는데, 1911~12년 겨울에 그린 〈생강단지가 있는 정물 Still Life with Gingerpot〉이라는 2점의 그림은 이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첫 번째 그림에서는 물체가 있는 그대로 묘사되어 있고, 2번째 그림에서는 같은 물체가 조립적 구성으로 변형되어 있다. 몬드리안의 입체파 시기는 1912~17년에 걸쳐 계속되었다. 그가 이 시기에 그린 나무, 파리 주택들의 정면과 건축용 발판의 구성은 개별적인 형태를 일반적인 도식으로 바꾸어 나타내려는 경향을 보인다. 그는 물체의 개별성을 초월한 리얼리티를 표현하고자 형태를 구성요소로 분할하는 분석적 입체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1913년부터는 추상(표현 대상의 함축적 의미를 제거하려는 시도로서의 추상) 쪽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몬드리안은 형태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황토색·갈색·회색으로 색채를 제한하고, 그림의 가장자리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채 한가운데의 초점 쪽으로 강하게 끌리는 입체파의 구성체계를 유지함으로써 여전히 입체파의 테두리 안에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구성체계는 일련의 타원형 구성작품을 낳았다. 그는 구성요소를 단순화하기 위해 곡선과 대각선을 피하고 차츰 수직선과 수평선만을 사용하게 되었다.

1914년 여름에 몬드리안은 중병에 걸린 아버지를 문병하기 위해 네덜란드에 왔다가,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바람에 파리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라렌에 정착했는데 이곳에서 신지학 철학자 M. H. J. 스훈마케르스를 알게 되었다. 선의 상징적 의미와 우주의 수학적 구성에 대한 그의 저서는 몬드리안의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라렌에서 그는 S. B. 슬레이퍼와 바르트 반 데르 레크와도 알게 되었는데, 슬레이퍼는 후원자이자 친구로서 그를 지원해주었고 반 데르 레크는 벽화의 원리에서 끌어낸 위풍당당한 화풍을 개발한 화가로서 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몬드리안은 반 데르 레크를 통해 그당시 전위미술가의 한 사람인 테오 반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를 만났다. 이 시기에는 주로 돔부르크의 교회를 묘사한 그림과 '선창과 바다'라는 새로운 주제를 통해 입체파 양식을 더욱 발전시켰다. 이 주제를 다룬 마지막 작품은 1917년에 완성되어 크뢸러뮐러 미술관에 전시되었는데, 이는 그의 입체파 양식의 마지막 단계를 보여준다. 하얀 바탕을 검은색으로 분할한 수직선과 수평선의 구성은 타원형 안에 응축되어 있다.

up↑

 

 데 스테일 

이 그림을 그린 뒤, 몬드리안의 작품에는 근본적이고도 새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현실에 존재하는 형태를 회화적 도식으로 변형하는 종래의 표현양식은 주제의 외적 형태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표현양식으로 바뀌었다. 그가 아닌 다른 3명의 화가(이 화파의 창시자인 테오 반 두스뷔르흐, 반 데르 레크, 빌모스 휘사르)도 이런 단계를 밟았는데, 이들은 몬드리안과 함께 미술잡지를 창간해 데 스테일(De Stijl) 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주제로 채택하지 않고 그 회화의 언어를 가장 기본적인 요소(직선과 직각, 즉 수직선과 수평선의 사용), 3원색(노랑·빨강·파랑), 그리고 3가지 기본적인 무채색(흰색·회색·검은색)으로 제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이 새로운 표현양식을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Neoplasticism)라고 지칭했는데, 신조형주의의 의도는 미술작품을 순간적인 시각과 화가의 개인적인 기질에서 해방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기법을 통해 그는 그토록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객관적 실재가 이제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때부터 그는 그림 속에 '리얼리티의 참된 모습'을 묘사할 수 있었다.

몬드리안이 초기에 그린 신조형주의 그림들은 현실의 단편이 아니라 우주의 조화에 대한 포괄적인 고찰에서 구도를 끌어낸 것으로 하얀 바탕에 원색으로 칠한 직4각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구성은 색채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화폭의 경계선을 넘어서서 그림 바깥의 공간으로 퍼져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1918년 그는 윤곽선을 그림에 다시 도입해, 색면들을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연결하고 배경과도 연결함으로써 유채색·무채색의 직4각형을 만들었다. 1918~19년 정4각형으로 분할한 일련의 마름모꼴 구성작품을 제작했는데, 이 네모꼴들은 굵고 검은 선으로 둘러싸여져 부드러운 황토색·회색·붉은색으로 구별되어 있었다. 1919년에는 색조의 차이를 이용해 평범한 바둑판 무늬를 율동적인 4각형 연속무늬로 바꾸어놓은 구성작품을 2점(하나는 어두운 색으로, 또 하나는 밝은 색으로) 그렸다. 1920년부터 그의 신조형주의 양식은 완전한 성숙기에 이르렀다. 그는 1919년에 파리로 돌아갔지만, 데 스테일과는 계속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원숙기의 표현양식 

그의 50회 생일을 축하하여 친구들이 암스테르담의 시립미술관에서 개최한 몬드리안 작품전은 그의 그림의 발달과정을 되돌아보는 회고전이었다. 이 전시회는 네덜란드 전통양식으로부터 출발해, 수평선과 수직선 및 원색과 무채색으로 우주의 조화를 묘사하는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그가 걸어온 길을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추구하던 목적지에 도달했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1922~38년 그는 그림을 좀더 명확하고 순수하게 만드는 일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자신의 그림을 자주 전시하지 않았다. 1922~40년 미국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한 번도 개인전을 열지 않았다. 1930년 ' 원과 직4각형' 그룹과 함께 그림을 전시했고, 1931년 ' 추상창조'(抽象創造·Abstraction-Création) 그룹과 함께 그룹전을 열었다. 1933년부터 그의 작품은 점점 더 꾸밈없고 수수해졌다. 1934년 미국의 미술가 해리 홀츠먼과 영국의 화가 벤 니콜슨(Ben Nicholson)을 만났는데, 이들은 곧 몬드리안에게 많은 도움을 주게 되었다. 니콜슨은 국제적 간행물인 〈서클 Circle〉의 편집자로서 몬드리안을 설득해 〈조형예술과 순수조형예술 Plastic Art and Pure Plastic Art〉이라는 평론을 발표하게 했다. 1938년 아돌프 히틀러가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한 것에 불안을 느낀 몬드리안이 파리를 떠나기로 결심하자 〈서클〉 동인들은 그를 런던으로 맞아들였다. 그는 2년 동안 런던 교외에 살면서 그림을 그렸는데, 런던이 폭격을 당하자 1940년 뉴욕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뉴욕 시에서는 홀츠만과 미술품 수집가인 페기 구겐하임, 미술 평론가이자 미술관장인 제임스 존슨 스위니, 그밖에 미국 미술계의 지도자들이 그를 기꺼이 맞아주었다.

이곳에서 몬드리안의 작품에 마지막 변화가 일어났다. 되찾은 자유와 뉴욕 시의 활기찬 생활, 그리고 미국 음악의 새로운 율동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처음에는 검은 선을 이용한 엄격한 무늬에서 벗어나 검은 선을 색띠로 바꾸었고, 그 다음에는 색띠의 연속적인 흐름을 작은 네모꼴의 연속 무늬로 바꾸었다. 이 네모꼴들은 서로 융합하여 다채로운 수직선과 수평선의 율동적인 흐름을 이루었다. 그가 20여 년만에 처음으로 연 개인전(1943~44)에 전시된 〈뉴욕 시 New York City I〉·〈브로드웨이 부기 우기 Broadway Boogi Woogie〉 같은 그의 후기 걸작들은 이러한 경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해 희망에 부푼 몬드리안은 1943년 〈빅토리 부기 우기 Victory Boogie Woogie〉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 못한 채 이듬해 폐렴으로 죽었다.
 

 

 미술의 목표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가 꾸준히 발전한 것은 현대 미술사의 두드러진 위업이었다. 그의 작품은 나중에 '기하학적 추상화'라고 불리게 된 미술을 예시하기도 했지만, 작품은 단순한 미학적 고려를 넘어서 있다. 그림을 통해 조화를 추구하는 그의 작업은 윤리적 의미를 갖고 있다. 네덜란드 칼뱅파의 엄격한 청교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그는 오랜 화가생활 동안 끊임없이 순수함을 달성하려고 애써왔다. 이 순수함은 '깨끗하다'와 '아름답다'를 뜻하는 네덜란드 어인 '스혼'(schoon)의 이중적 의미로 가장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의 아름다움은 순수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순수함은 그림의 테두리를 넘어서 건강하고 깨끗한 생활로 가는 길을 인류에게 가르쳐준다. 1920년 몬드리안이 〈신조형주의 Le Néoplasticisme〉라는 책을 '미래의 인류'에게 헌정했을 때, 그는 미술이 인류애로 나아가는 길잡이가 될 수 있고 겉으로 나타난 우발적인 사실과 개인의 자의적인 견해를 제거하는 쪽으로 작용할 수도 있으며, 그럼으로써 전통적인 비극적 존재론을 조화롭고 새로운 인생관으로 바꾸어줄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하려고 애썼다. 이 목적을 위해 그는 엄격하고 강직한 기하학 언어를 이용해 최고의 순수함을 창조하려고 애썼으며, 또한 최고의 명쾌함과 힘의 유토피아를 이루고자 했다. 몬드리안은 현대미술의 개척자고 인류를 위한 대변자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회화를 통해 얻은 결론을 1937년 〈서클〉에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사람은 인류를 계몽함으로써 인류에 봉사한다."

H. L. C. Jaffe 글<출처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Home > 현대 추상미술 > 몬드리안 > 갤러리

up↑

 

Copyrightⓒ2004~ @FRACTAL. All rights reserved.